우리는 오선지가 있음으로 해서 음악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물론 그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와 기호를 가지고 음악을 표현하는 방법은 연주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현재 오선지에 그려진 악보만큼 정확한 음악적 표현은 다른 것에서는 대체 불가능하다. 가난했던 슈베르트가 돈이 없어서 가질 수 없었던 그 오선지. 그 오선지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오선지는 어떻게 '오선'이 되었을까? 처음부터 다섯개의 줄을 가졌었을까?


7세기 세비야(Seville, 스페인의 남서부)의 음악학자 이시도르(Isidore)는 음악을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원전 3,000년전 이집트인들이 음악 기보를 했던 증거가 발견되었다. 또한 고대 그리스에서도 그러한 음악적 기보의 시스템이 있었으며, 형태는 달랐지만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도 발견되었다. 


<정간보 : 조선 세종이 음의 시가를 알 수 있게 창안한 유량악보(有量樂譜). 동양에서는 가장 오래된 유량악보이다.>


현대의 표기법은 카톨릭 교회에서 유래되었는데, 교회에서 수도자들이 종이에 기록하는 법을 개발했다. 이후 8세기 초기에는 네우마(Neume) 또는 점과 획을 문자 위에 사용하였다. 조금 복잡한 음악적 표현이 기록가능했으나 음높이(Pitch)와 시간(Time)을 기록할 수 없기에 사실상 악보로써의 기능은 많이 미흡하고 이미 해당 곡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상기시키는 역할이 강했다. 


※ 네우마

 근대 기보법이 생기기 전에, 하나 또는 연속되는 몇 개 음의 상승과 하강을 표시한 기호(→ 음표).  -Daum백과-


<12세기에 쓰였던 네우마 표기법과 한 줄로 된 악보>


네우마의 가장 큰 문제인 정확한 피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래 4개의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4선지가 도입되었다. 물론 이 선들의 역할은 피치를 나타냈다. 현재 보편적으로 쓰는 5개의 선으로 이루어진 오선지는 13세기에 이탈리아에서 등장하여 프랑스에서 처음 도입되었고, 16세기에 들어서는 널리 사용되었다. 4행, 5행, 6행으로 이루어진 보표는 1600년 후반까지도 사용되었다.


<4선지로 이루어진 악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