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개봉 전에 쓴 글입니다. 다른 곳에 게시하다가 옮긴 글로써 여기 게시일 보다는 8개월 가량 전 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영국밴드 비틀즈와 더불어 Queen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비록 미국시장에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를 비롯해 많은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밴드죠.


제가 퀸은 알게 된 것은 당시 개국한지 얼마 안된 신생 방송국 SBS(당시 서울방송)의 예능프로그램에서였습니다. 당시 '좋은 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이봉원이 해외의 유명 뮤직비디오를 B급 감성으로 따라하는 코너가 있었죠. 해외 POP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기회가 별로 없었던 당시에 이렇게 보게 되는 해외 뮤직 비디오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물론 저는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요. 그 중 한회에서도 보게된 뮤직 비디오는 퀸의 I Want To Break Free 였습니다. 사실 이 제목도 당시에는 기억하지 못했죠. 



지금봐도 당황스러운 그 코믹스러운 뮤직 비디오는 당시 어렸던 저의 가슴에 꽤 파격적인 뮤직비디오로 자리잡았었습니다. 꼭 다시 한번 보고 싶었던 이 뮤직 비디오는 끝내 다시 보지 못한 채로 지내다가 유튜브가 지금처럼 활성화 되면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년이 훌쩍 넘은 후에 말이죠. 이래서 유튜브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밖에 없나봅니다.


흔치 않게도 퀸은 멤버 개개인 모두가 작곡을 하는 탓에 한 앨범 내에서도 여러 장르가 혼합된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각각의 멤버가 추구하는 곡의 스타일이 다르다 보니 티격태격 하는 일도 잦을 수 밖에 없었죠. 이런식의 앨범 발매의 경우 밴드 정체성이 모호한 단점을 가질 수도 있는 반면에 질리지 않는 매력을 발산할수 있는 장점이 있기도 합니다. 퀸은 어떤 장르도 멋지게 소화해 내는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있어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부각된 케이스로 봐야 하겠죠.


사실 많은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We Are The Champion' 이나 'We Will Rock You' 같은 노래들을 많이 기억하지만 퀸의 앨범을 듣다보면 상당히 여러 장르의 음악이 혼재하며 CF를 통해 들었던, 정말 퀸의 노래라고는 생각 못했던, 그런 노래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프레디 머큐리가 미국에서 게이바에 심취해 잠시 디스코 음악으로 앨범을 만들었던 예도 있고, 솔로활동으로 오페라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방송사에서도 중계를 했던 'Live AID' 무대에서의 라이브 공연 모습도 첨부합니다. 이 무대에서 퀸, 특히 프레디 머큐리는 할당된 20여분간 무대를 휘어잡으며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 이때 받은 대중들의 환대, 그리고 이어진 레코드 매출 상승에 힘입어 퀸은 '제2의 전성기' 를 맞이하게 되었죠. '제2의 전성기'라고 함은 그전 부진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가 되겠는데, 실제 이전 몇 년간은 약한 성대 등의 이유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라이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 시기에 라이브 영상에서도 고음을 올리지 못한채 한 옥타브를 내려 그 답게 않게 노래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 20여분의 영상이 지금의 퀸의 진가를 볼수 있는 최고의 동영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잘나가던 프레디 머큐리에게 에이즈라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됩니다. 사실 제가 초점을 맞추고 싶은 부분도 퀸의 성공 스토리가 아닌 프레디 머큐리의 병이 진행된 이후 잘 알려지지 않은 매우 안타까운 말년의 모습과 끝까지 놓지 않던 음악의 열정에 대해서입니다. 국내에서야 한창 잘 나가던 때의 모습은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에이즈로 인해 두문불출하고 이후 사망하기까지는 잘 알고 있지 않죠.


안타깝게도 프레디 머큐리는 양성애자였습니다. 그가 제안한 밴드의 이름 'Queen' 이란 단어에도 속어로서 'gay'와 같은 의미도 있다고 하는데 (Queen과 Queer가 가까운 발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멤버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저 단어를 밴드명으로 고집했을 거라는 추측이 들게 합니다. 실제로 죽을 때까지도 절친으로 지냈던 전 이성 애인이 곁에 있었고 동성 애인과는 동거 상태였다고 합니다.


에이즈는 지금이야 약만 꾸준히 먹으면 평생 생존률이 높은 병이지만, 에이즈가 발견된지 10여년 정도 되었던 그 당시만 해도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병이었을 겁니다. 프레디 머큐리도 당시 먹던 약이 있었다고는 합니다만 후에 약의 효과가 느껴지지 않자 스스로 약을 끊고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당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최고의 양성애자 가수가 에이즈에 걸린 사건이어서 그랬는지 당시만해도 에이즈의 감염경로는 '동성애'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었습니다. 당시 에이즈를 조심하자는 구호가 담긴 전단지도 국내에 많이 돌았는데, 저는 그 것을 수거해 뒷면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기에 기억납니다.


프레디는 1987년, 멤버들은 1988년에 이미 그의 에이즈 감염을 알고 있었지만 절대 주변 사람들에게도 에이즈 감염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안그래도 성정체성에 대해 기자들이 추측성 기사를 써오던 터라 언론과 사이가 좋지 않던 프레디가 그런 멋잇감을 주기는 당연히 싫었겠죠. 어머니에게도 죽기 바로 전에 성정체성에 대해서 실토하던 그였는데 말입니다.


퀸은 1986년 15만명(비공식적 20만명)의 관객인 운집한 영국 넵워스 공원에서 공연을 하게 되는데 이 공연이 퀸의 마지막 공연이 되어버립니다. 그 즈음 프레디가 에이즈에 걸려 건강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결국 넵워스 공연 이후로는 퀸의 공식 라이브 활동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다만 프레디 머큐리는 1988년경까지 솔로곡으로 라이브는 계속했습니다. 몽셰라 카바예와 함께한 'Barcelona' 라는 곡으로 말입니다 (그가 에이즈로 사망했다는 이유로 이 곡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공식 응원가에서 탈락되었습니다).


<1986년 8월 9일. 퀸의 마지막 공연, 넵워스 공원에서>


3년 뒤인 1989년, 밴드는 13번째 정규 앨범 The Miracle을 발매하게 되는데 이 즈음 프레디는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그때부터 음악 활동에만 전념한 결과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듣는 앨범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프레디가 에이즈에 걸렸다가 소문이 파다한 시점이라 퀸의 멤버들 역시 굉장히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극비리에 병원에서 남자친구인 짐 허튼과 에이즈 검사를 받은 것이 병원 관계자를 통해 세상에 이미 알려졌었죠. 당시 프레디만 양성 판정을 받았고 당시 짐 허튼은 그 이후에 프레디가 한창 병이 악화되고 있을 시점에 양성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짐 허튼은 1990년에 받았던 에이즈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프레디에게 1년 간 그 사실을 숨겨오다가 끝내 프레디에게 알렸고 이 후 그는 2010년에 사망했습니다.


2년 뒤 1991년에 14번째 앨범 Innuendo는 발표하고 프레디는 뮤직비디오에 병색이 완연한 충격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여전히 프레디의 건강 문제로 투어는 불가능했으며, 병색을 감추기 위해 한 듯한 짙은 화장과 흑백으로 찍힌 뮤직비디오에 훤히 드러난 프레디의 초췌한 모습에 팬들은 불안해 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렇게 투어는 커녕 공식 석상에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좋은 떡밥을 낚아챈 언론이 가만 있지 않았고, 눈에 띄게 초췌해진 프레디 머큐리와 관련해 온갖 루머가 나돌게 됩니다.


그럼에도 프레디는 건강이 허락할 수 있을 때까지 음악 작업을 했고 뮤직비디오 역시 출연을 꺼리지 않습니다. 그가 사망 직전에 찍은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의 뮤직비디오도 원래 애니메이션으로 대체하려고 했으나, 프레디가 고집을 부려서 멤버들과 함께 출연하는 평범한 내용으로 바꿉니다. 이 곡이 수록된 마지막 앨범 Innuendo도 작업할 당시 병색이 짙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프레디는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약을 먹어가며 악착같이 버텨내고 몸이 잠깐 좋아지면 그때 다시 작곡하고 노래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다른 멤버들은 프레디를 배려하여 세 멤버들이 데모 버전을 미리 만들어 놓고, 프레디는 컨디션이 좋을 때 스튜디오에 와서 보컬을 녹음하는 방식으로 앨범제작이 진행되었습니다. 생전 마지막 싱글인 The Show Must Go On은 음이 높아서 멤버들이 프레디가 이 곡을 부를 수 있을지 걱정 했으나, 완성된 앨범으로 들어보면 아주 멋지게 소화해낸 모습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당시는 지금같은 오디오 기술이 없어서 사람의 목소리를 높낮이를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했죠. (제 기억으로는 Auto-Tune이 2000년대 초반에 출시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고통이 상당했을텐데, 그 와중에도 진짜 프레디 머큐리가 불러서 멋지게 소화해낸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는 같은 해 1991년 11월 23일 일어설 수도 없던 프레디는 비서를 통해 결국 에이즈 투병 사실을 밝히고 24시간이 채 안된 11월 24일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사망 무렵엔 눈도 안 보이는 지경이었다고 하는데 아마 고통도 상당히 뒤따랐겠죠. 이후 퀸의 나머지 멤버들이 프레디의 마지막 순간의 녹음들을 완성시키기 위해 작업한 앨범 Made in Heaven이 1995년 발매되어 영국차트 1위에 오른 9번째 퀸 앨범이 되었습니다.


올해 이런 퀸의 내용을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할 예정인데 보시기 전에 이러한 내용을 알고 보시면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빨리 개봉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 이런 재능있는 밴드가 또 나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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