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g microKORG XL+ Synthesizer / Vocoder)

BBC의 전속 작곡가 피터 하웰은 BBC를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밝게 비춰준 두 가지 음악적인 사건으로 하나는 백파이프와 지금 설명할 보코더를 언급했습니다. 사람의 음성을 가지고 신디사이저화 시키는 기술을 가진 보코더(Vocoder)는 그 자체가 하나의 악기인데, 사람의 목소리 파형을 가지고 건반을 눌러 가면서 만들어 내는 악기로 생각하시면 이해가 더 쉬울 것입니다. 사실 백파이프는 왜 언급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쪽 문화권이 아닌 관계로 문화적인 이해 차이가 있는 거겠죠.

보컬의 전체 또는 보컬의 일부분을 보코더로 이용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은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대표적으로 스티비 원더와 다프트 펑크로 예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두 노래의 발표 시기는 40년의 차이가 나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보코더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되기도 합니다.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는 2:22 분 부터 보코더가 나옵니다.

Stevie Wonder - Close To You

Daft Punk - Get Lucky

보코더의 역사는 꽤 오랜 시간을 되돌아가야 할만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보코더의 전신인 Voder는 1930년대 벨 연구소의 호머 더들리 (Homer Dudley)에 의해 개발되어 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선보이게 됩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로보트처럼 변조되어 나오는 것이 현재 쓰이는 보코더와 소리가 많이 흡사하죠? 당시 박람회에서 선보인 이 보더의 시연은 굉장히 어려운 운용기술로 인해 호머 더들리와 조수는 한 달여 간을 연습하여 겨우 시연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목소리 변조의 기능은 음악적인 활용을 위한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Voder가 개발된 배경은 2차 세계대전과 연관이 있죠. 당시 보안성이 좋은 구리 케이블을 통해 대서양 넘어의 국가들과의 통신이 필요했고, 이 구리선은 대역폭이 좁아 100Hz가 넘어가는 음성에 대해서는 전송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말하는 음성은 3000~4000Hz 정도가 되기 때문에 이 구리선을 통과하기에는 별도의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래서 보더를 통하여 음성의 파형 변조와 압축을 통해 구리선으로 전송이 가능한 영역으로까지 대역폭을 줄이게 됩니다.

코드명 SIGSALY로 명명된 이 특허 기술은 처칠 수상과 루즈벨트 대통령의 비밀 회담용 통신으로 활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전세계의 정상들과의 통신으로써 활용을 계획하였으나 거대한 장비를 각자 보유해야 하고 변조된 목소리로만 통신이 가능하다는 등의 실용성이 떨어져 제대로 활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벨 연구소는 음악방면으로 방향을 틀어 아일랜드 민요 'Love's Old Sweet Song' 이라는 노래의 녹음을 보코더를 활용하여 선보이게 됩니다. 당시 비록 상업적인 성공은 없었지만 음악방면에서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이후 1974년 Kraftwerk가 Die Roboter라는 보코더를 활용한 노래를 발표하면서 보코더의 사용이 음악계에서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Kraftwerk - Die Roboter

누가 봐도 '사람'같은 사람들인데 후렴에 'we are the robots' 라고 뻔뻔하게 우겨대는 모습이, 후대의 보이스 피싱 조직원들에게 큰 가르침이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물론 당시에는 신기함을 넘어서 획기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지만요.

또한 Laurie Anderson이 싱글 'O Superman'에 보코더로 유명한 제품 Roland VP-330을 사용하였으며 재즈의 거장 Herbie Hancock도 보코더를 사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가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당시에 새롭게 떠오르던 장르인 힙합에서도 많이 사용되게 되며,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의 발달에 힘입어 더욱 더 많은 뮤지션, 그리고 더욱 더 다양한 장르에서 애용하게 됩니다.

Planet Rock - Afrika Bambaataa & The Soulsonic Force

Bon Jovi - Livin' On A Prayer

이 밖에 1940년대 보코더와 다른 기술과 탄생배경을 가진 'Sonovox' 라는 제품도 있었습니다. 스피커가 달린 기계를 목에 달고 노래를 부르면 변조가 이루어지는데, 당시 CF와 앨범을 통해 홍보되며 반짝 인기를 누렸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그 시대에도 새로운 소리에 대한 갈망은 대단했었나 봅니다. 아래에 공연 동영상이 있습니다.

빈티지 보코더는 현재 높은 가격으로 거래가 됩니다. 그럴 일은 매우 희박하지만 만약 집에 오래된 보코더로 의심되는 장비가 보이신다면 거래를 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아마도 제가 이 보코더 사용법에 대해 조금 더 연구하게 된다면 다소 불순한 이유인 저의 부족한 보컬 실력을 한껏 가려보기 위함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