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나 역사얘기를 좋아했었나?'라는 스스로의 의문이 들만큼 요즘 전쟁사에 빠져있다. 사실 이런 내가 생소할 만큼 나는 역사,국사 공부에 관심이 없었고 따라서 매우 무지한 수준이었다. 학교에서도 역사과목은 늘 외워야 시험에서 어느정도 점수는 얻어낼 수 있었으므로 암기에 부담이 컸고, 잠시라도 집중에서 벗어나는 순간 다음 사건이 연결이 안되기 때문에 꽤나 흥미없는 과목이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역사에 대해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는 바로 학교를 벗어나 인생을 살면서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뉴스를 가까이 하게되고 정치,사회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역사책에서나 보았던 제도,법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불어 뉴스와 더불어 시각을 해외로 돌리다보니 민족,인종들 간의 갈등이 이해되기 지작했고 이는 단일민족에 국한된 국내 사정에 갇힌 시각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나이가 드니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내가 배웠던 것처럼 역사를 아직도 무조건적인 암기로서 접근하려했다면 나는 아직도 역사에 흥미가 없었을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사실상 나에게는 역사들을 책으로서 찬찬히 찾아보고 읽어볼 여유는 없었다. 이미 벌려놓은 일들이 많아 수습이 힘들 정도였고(이 블로그 운영도 그 중 하나다) '시간이 나면 해야지'라고 막연히 생각해놓은 것들은 이미 차고 넘쳤다. 그렇기에 손쉽게 역사라는 것을 나에게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는 국방TV의 '토크멘터리 전쟁사'는 아주 반가운 존재였다.
무엇을 하기 애매한 시간과 공간에서는 토크멘터리 전쟁사를 많이 시청했다. 보다보면 빠져들어서 4~5편을 연달아 보는 경우도 있었고, 한 번 시청을 시작하면 적어도 2편 이상은 본듯 하다. 대체적으로 윤지연 아나운서의 미모에 내 시선을 뺏기긴(?) 했지만, 이세환 기자님의 살이 빠져가는 모습과 반대로 임용한 박사님의 뱃살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시청 포인트였다. 또한 허준의 늘어가는 입담과 점점 그 입담을 맞받아쳐주는 그들의 케미를 보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이 토크멘터리 전쟁사를 볼 때마다 임용한 박사님의 방대한 지식에 감탄하곤 한다. 아무리 책도 집필하신 분이고, 사학자로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이라지만 저렇게 엄청난 분량의 역사적 사건을 시시콜콜한 것까지 방출해 내는 것에는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다. 그런 모습을 보며 '방송전에 상당한 양의 복습을 하고 오셨겠구나'라는 느낌이 들었고, 실제로 임용한 박사님도 방송 중간에 한 편을 녹화할때 대략 책을 5권 정도는 읽고 온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에는 자료가 많지 않은 전쟁사도 더러 있었으므로 외국어로 된 다른 나라의 책도 참조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렇다면 자료준비에 더더욱 상당한 시간이 들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본인의 의견으로도 거의 매일이다시피 녹화 전날까지도 밤을 새우고 2~3시간 수면하면서 녹화준비를 하셨다고 하니 어떤 과정을 거쳤던 간에 노력에 박수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제작진들의 노력에 힘입어 토크멘터리 전쟁사를 통해 쉽게 역사를 배운다는 것에 대해 어떨 때는 미안함 마음이 들 정도였다.
초창기 방송분을 보았을 때는 내심 계속 봐도 되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 우리나라 시점으로 편향적이지 않을까 (이른바 국뽕) 걱정되었기 때문인데, 방송주체가 군인들 상대로 방송하는 '국방TV'였기 때문에 더 그러한 의심을 거둘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초반 방송분에서는 방송 중간중간 MC허준의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이 상당수 보였다. 하지만 회차를 거듭할 수록 오히려 군인들을 상대로 정신교육하는 자료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의 중립성을 보였다. 그런 중립성이 나로 하여금 계속 토크멘터리 전쟁사를 시청하게 하는 이유였다.
위에도 잠깐 서술했지만 사료가 부족한 역사적 사실이 많다. 어떠한 원인으로 인해 또는 어떠한 과정으로 인해 한 사건이 벌어졌는지는 기록하지 않은채 결과만 서술한 당시 자료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기에 어느 한 진영의 자료만 믿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비슷한 맥락이지만 자기미화의 모습도 역사서에 강조되므로 온전히 간략히 서술된 자료만 믿기보다는 서술하지 않은 사실에도 추리를 곁들여야 한다. 물론 이는 임용한 박사님의 의견이다. 위 문장은 이 게시물의 주인인 내가 제멋대로 정리해서 썼지만 임용한 박사님의 의견에 크게 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서 임용한 박사님과 이세환 기자님의 추론이 곁들여져서 언뜻 이해되지 않은 부분도 '그럴수도 있겠구나'라는 이해로 마음을 돌리게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이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시 특정 국가에서는 도저히 징집할 수 없는 숫자의 병력이 기록에 등장할 경우 그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주는 경우다. 당시 중국사료는 뻥튀기가 있었다던지, 그런 병력 숫자는 노예들과 식솔들이 포함된 숫자라던지, 실제 전투병력이 아닌 보조병력까지 포함된 숫자라던지 말이다. 덕분에 고대 중세 역사서는 기록대로 맹신할 수 없다는 불신(?)이 생기면서 사학자들의 연구노력이 쉽지 않은 것임을 깨닳았다.
물론 역사적 고증이 약간 잘못된 것에 대한 비판의 시각도 존재한다. 사실 그런 것을 단번에 알아차린 사람이 있다는 것에 더 놀랍긴 하다. 하지만 사실 매회당 그 방대한 분량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완전히 사실과 일치할 수만은 없다. 아무리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 한들 합치면 몇 십, 몇 백 시간이 되는 분량을 혼자 입으로 토해냈을 때 그 중에 한 마디라도 실수할 수는 있지 않을까? 아마도 내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라도 그만큼 떠들었다면, 또한 전날 밤새워 복습하고 왔던 내용이었다 한들 나도 자신할 수 없다. 난 더 틀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지적했던 이 역시 그런 부분은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 토크멘터리 전쟁사의 방송시기는 2016년 6월 8일부터 2020년 4월 22일 까지다. 즉 지금은 폐지되어 지금까지의 방송분만 국방TV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고 더 이상의 분량 업데이트가 없다. 갑자기 폐지되었고 왜 폐지가 되었는지 속 시원한 국방TV의 답변도 없다. 진행자들은 마지막 방송즈음에서야 폐지 통보를 받았고 그로인해 마지막 방송분에서 제대로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서는 추측만 있는 상황이다. 1월 22일 새로운 국방홍보원장으로 임명된 전 한겨레신문 출신 박창식원장이 폐지를 주도했다는 얘기가 가장 심도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명확히 얘기하지 않고 있고 국방TV 관계자들 조차도 '시청자들이 지루해 한다'라는 다소 납득하지 못할 이유들을 내세워 정확한 답변을 꺼리고 있다. 이에 제작진이나 출연진들 역시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와중에 임용한 박사님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란을 통해 남긴 글에 눈길이 간다.
https://www.youtube.com/post/UgwyUI8P3FqlA8Cjlep4AaABCQ
이 글에서 임용한 교수님의 지식인다운 자세에 마지막까지도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보는 포커스는 국방TV에 대한 서운함 토로 보다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한 편을 제작하기 위해서 자료 연구에 상당한 고생이 있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것을 몰랐으면 모를까 이 노력을 알게된 이상 계속 토크멘터리 전쟁사를 이어서 방송해 달라는 요구는 차마 할 수 없었다. 물론 시청자들의 요구는 대부분 이렇다. 토크멘터리 전쟁사 제작진이 Red Pig Academy라는 별도의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channel/UClSp9R4eHpHOY6LXI5BDpfg)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 채널에서 이어서 방송해달라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간에 폐지는 되었고 나 또한 다시 다른 채널을 통해 토크멘터리 전쟁사가 다시 방송되기를 소심하게 소망한다. 나는 그들의 피나는 노력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시청료 한푼 쥐어주지 않는 비정한 애청자이지만 말이다. 이 프로그램을 만나서 즐거웠고 나는 또 이전 방송분을 다시 시청하러 유튜브 채널을 방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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