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무언가를 대하는 것에 있어서 나만의 관점과 철학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히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보통 그것을 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인지는 알기 힘들다. 그렇다고 그런 것들이 여러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내가 습득한 나의 가치관이 투영된 습관과 작업 방식을 하나하나 상대방에게 지루해할 정도로 먼저 풀어내지 않는 이상, 내 방식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기도 힘들고, 또한 다른 사람의 방식 또한 알아내기 힘들다.
아마도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생각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철학이 나의 평소 사고방식과 맞아떨어지기라도 하면 왠지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황홀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나도 엉망인 사람은 아니었어"라는 자신감과 함께 말이다.
어쩌면 이런 탓에 무엇을 배우든 기초부터 다질 수 있고 함께 배우는 여러 사람이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정규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배우는 과정에서 알고는 싶은데 너무 사소해서 물어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또한 질문 자체가 추상적이 되어 버려서 의도와는 다르게 질문 자체가 어버버 하게 나와 버리는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청자와 화자가 서로 동문서답을 할 확률이 높다. 다시 말하면 스승 스스로가 먼저 자신의 에피소드를 풀 듯이 흘러가는 대로, 경험했던 대로 스윽 풀어내는 내용들이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책이나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 것들이면 더욱 좋다. 그 과정에서 정규 교육내용이 이해가 안되는 내용도 어느순간 연결 고리를 찾은 듯 쉽게 이해가 되는 내용도 더러 있다.
김도훈 작곡법 (지은이 김도훈).
사실 내가 이 책을 골라던 것을 마마무에 대한 관심이 큰 영향을 주었다. 물론 김도훈 대표에 대해서는 작곡가로 활동 중이던 2000년 초반부터 이름은 들었지만, 유행에 편승하는 그저 그런 흘러가는 작곡가 중에 한 사람으로 인식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할 법도 했던 것이 갑자기 제대로 R&B 필을 살린 끈적끈적한 곡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인데, 그런 노래들을 휘성과 거미가 부른 것을 봤을 때 상당히 감탄했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당시 국내에 R&B 유행에 지대한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 김도훈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자꾸 친구의 '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가 생각나면서 피식대는 것은 것은 나뿐인가?). 당시 그런 그의 커리어를 몰랐었기 때문에 그는 R&B에만 특화된 작곡가로 생각했었고, 곧 유행이 바뀌면 사라질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만큼 그의 R&B음악에 대한 실력이 뛰어났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2020/01/29 - [음악 이야기] - 늦게 알아버린 '마마무'에 입덕하다
하지만 그렇게 여겼던 그가 15년이 지난 후에도 (현재 25년 경력으로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나를 포함한 대중들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음악을 아직도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랍다. 문득 그의 25년 간의 현업 생존 비결이 궁금했다. 사실 예전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대중음악 작곡가들은 소리소문 없이 트렌드에 밀려 사라지는 것을 많이 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도훈 대표는 살아남았다. 과연 그는 어떤 피나는 노력을 했기에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 책에서는 그의 작업 습관들과 그가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현업으로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의 일부가 담겨있다. 사실 책에서 공개한 내용들이 일부인지 전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다음 집필할 책(그럴 계획이 없을 수도 있지만)을 위해 일부만 공개했다고 믿고 싶다. 어쨌든 그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가 궁금했던 나로써는 그의 비책을 엿보는 재미에, 그리고 내가 잘 아는 노래에 대한 작곡 에피소드가 나올 때마다 반가워 더욱 이 책에서 흥미를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책을 보며 작곡을 하는 작업방식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작업 방식에는 아주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다음과 같은 예가 나올 수 있다.
멜로디를 먼저 쓰느냐? 코드 진행을 먼저 쓰느냐?
하지만 이 것들 외에 "왜 가사 작업을 먼저할 생각은 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사실 랩이 주가 되는 힙합에서는 이렇게 작업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은데 말이다. 나 또한 이 작업 진행 방식에 대한 생각도 다시금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음악을 소비하는 청자의 입장에서는 가사가 크게 와 닿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다. 거기에 덧붙여 요즘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은 다소 유행적인 키워드를 쓴다면 더욱더 트렌디함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곡 작업에만 온 신경을 몰두하다 결국 진이 빠져 곡 후반부 작업인 가사 작업에는 크게 신경을 못 쓰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이미 가사 작업을 할 때가 되면 얼른 마무리하고 끝낼 욕심만 앞서는 탓에 큰 신경을 못 쓰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작업에서 대중들의 선택이 갈릴 수도 있다는 점은 많은 작곡가들이 알아둘 필요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곡을 만드는 데 있어 어떠한 방법들이 있는지는 자신의 작업 경험에서 비추어 보면 많은 경우의 수를 머리 속에 그려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방법 또는 방식에 중점(무게)을 둘 것인가?"는 오래 생각해 보지 않으면 도통 답이 나오지를 않기도 한다. 혼자 고민하며 스스로 결론을 내리는 것도 좋지만, 이 책을 보면서 조금 더 빠른 결론을 내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다른 작업에 몰두하며 시간을 버는 것을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당신이 알면서도 간과했던 부분에 대해 다시 짚어줌으로써 충분히 자극제가 되어줄 수 있다.
이 책 서두에 김도훈 대표가 서술했듯이 작곡은 요리와 비슷하다는 말이 가슴에 꽂혔다. 어쩌면 이런 말과 맥락이 비슷할 수 있다. 작곡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으로 인식하느냐? 아니면 요리처럼 정해진 재료가 있고 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변하는 공식의 조합으로 인식하느냐? 어찌보면 음악은 요리 또는 수학 공식이 더 어울릴 것이다. 물론 듣는 청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끼지 않겠지만, 만드는 사람은 그 공식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어차피 그 공식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기에, 차라리 처음부터 공식이나 레시피에 대입시키는 것이 효율 측면에서도 탁월할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기 전에 알아두자!
이런 류의 책이 그렇듯 어느 정도의 기본 음악 지식은 있어야 이해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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